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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한 가운데서 춤을
김이나의 <김이나의 작사법> 본문
커뮤니티 서비스 스타트업에서 나오기 얼마 전에 매니저로서 한 모임에 껴서(?) 외근했던(사실은 거의 놀았던) 날에 멤버분께 빌린 책. 관심 있던 글쓰기 모임의 소개 페이지에도 자료로 쓰여서 살짝 궁금했던 차였다. 멤버 A 님은 제일 먼저 도착해있었고, 내가 두 번째로 외부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어떤 모임인지 전혀 모르고 나간 상태여서 조금은 긴장했는데, 청아한 목소리를 가졌던 A 님은 나보다도 더 친화력이 좋아 보이셨다.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에 <김이나의 작사법>을 보이며 오는 길에 다 읽었다고 했다. 내가 생각보다 큰 관심을 보이자 빌려줄 수 있다고 했고, 나는 바로 '오 그럼 감사하죠'라며 빌렸다!
대학교에서의 수업 이후, 독서 모임을 가지지 않는 이상 같은 책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 같은 책을 읽고 A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실제로 이 책이 읽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본 기억도 희미했다. 아이패드와 이북리더가 있지만, 실물 책을 훨씬 더 좋아하고, 아직도 연말에 내년에 쓸 다이어리를 직접 구매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책을 빌려서 보는 행위' 또한 좋아한다. 무언가 순수한 재미를 위한 아날로그적인 행동으로 느껴진달까. 고마운 마음으로 빌리고, 남의 물건에 상처를 입히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재미있게 읽고, 읽은 책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날짜를 함께 정하고, 그 후에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함께 감상을 나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이 책은 읽고 난 후 들었던 두 가지의 큰 감상이 있다. 첫 번째로는 내가 전혀 모르던 대중가요 세계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김이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멋지고 현실적인 작사가인지 알게 된 점이다.
그는 글을 조금씩이나마 끄적이며, 한 번씩 작사해보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가볍게 생각해본 게 부끄러울 정도로 똑똑한 직업인이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보이는 짧은 글귀와 사진부터가 이를 나타내는 듯하다.
본문에 들어서기 전 작가의 말에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나는 간절함과 현실 인식은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꿈이 간절할 수록 오래 버텨야 하는데,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무모함은 금방 지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한쪽 눈을 뜨고 걷다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그 기회를 알아보는 것도, 잡는 것도 평소의 간절함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모든 직업은 현실이다. 그러니 부디 순간 불타고 마는 간절함에 속지 말기를. 그리고 제발, 현실을 버리고 꿈만 꾸는 몽상사사 되지 않기를.
<김이나의 작사법> p.15~16
이 마지막 문단에 '현실'이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등장한다. 김이나 작사가가 '투잡'을 그만두고 전문 작사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이 밥벌이가 회사 밥벌이보다 나아졌을 때라고 어디선가 언급했던 것이 기억난다. 꿈만 주입하는 비현실적인 어른이 아님이,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결국 사이드 프로젝트를 직업으로 전환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 정말 멋지다.
이 책의 제목과 지은이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읽기 시작했다. 차례를 보니 제목에 '작사법'이 있는 만큼 여러 목차 중 작사법에 관한 이야기를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길게 서술하고 있다. ({1부 감정의 언어. 작사가의 삶_ 작사의 기본기}) 얼마나 '예쁜 필터'를 제거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지 기본 작사법은 물론, 멋지지만은 않은 '업계 용어'까지 알려준다. 대중가요계에서 일하는 것이란 얼마나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음표를 휘갈겨 쓰는 천재 아티스트의 모습과 동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철저하게 계산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부분을 외면할 수 없는지 담담하게 알려준다.
{2부 좋은 사람들의 삶은 노래로 남는다_ 소통과 관찰의 기록} 에서는 작사가의 눈으로 바라본 유명한 가수들의 모습들을 그려낸다. 조용필, 이선희 등 거장부터 시작하여 아이유, 가인 등 아티스트와의 작업(작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1부에서 이해한 작사법을 토대로 읽어나갈 수 있다. 자전적 에세이므로 김이나 작사가의 가치관도 자연스럽게 베어있다.
별일 없이 사는 듯하다가 문득 행복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 곳의 가사를 쓰기 며칠 전 샤워를 하는데, 평생 그런 시선으로 본 적 없었던 샤워기 물줄기가 그렇게 반짝거리고 예뻐 보였다. 수압과 수온이 적당한 것이,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이 곳의 시발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창피할 지경이지만, 그렇게 '사소한 순간'이 행복으로 느껴질 때 나는 그 어떤 대단한 순간들보다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살에 닿는 듯한 행복'은 살면서 그리 자주 오지 않지만, 이 또한 훈련하다 보면 좀더 자주 느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순간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나는 그 사소한 행복의 찰나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이나의 작사법> p.126~127
개인적으로 3부를 읽으면서 '아, 대중가요 작사가 맞구나'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3부 세상에 합당한 이별은 없다_ 어떻게 사랑을 노래할까}) 사랑에 대한 참으로 다양하고 세밀한 감정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어떻게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는 작사가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하지만, 그 '사랑'의 모습은 '젊은 이성 남녀의 연애' 외에는 크게 발견하기 어려웠다. (4부에는 동물의 시점에서 쓴 가사라던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가사가 나온다) 또한 '여성스러운'과 같은 단어 사용(p.226)과 같은 표현이 한 번씩 등장해 사랑의 모습, 혹은 여자/남자의 모습이 생각보다 다채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다양한 감정이 드러나도 결국 어떠한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대중가요의 가사 작업이기에 그렇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만족스럽지(감히 내가?) 못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반골 기질인가 보다. 하하. 아니면 더 종류가 많은 사랑이 있지만, 대중가요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뉘앙스라도 있기를 바란 걸까?
{4부 당신의 망상과 공상은 소중하다_ 나의 아이디어 사냥법}에서는 더 다양한 소스 찾기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특히 꿈을 안 꾸는 날을 세는 게 더 빠른 나로서는 꿈의 기억을 잊지 않고 가져와 작사의 아이디어로 쓴 점이 흥미로웠다. 나의 기억으로는 아직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이나 물체로 내가 꿈에 등장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의 꿈에서 길고양이와 껌이었던 적이 있다는 것을 보면 사람이 다양한 만큼 꿈도 정말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큰 프로젝트의 작사를 맡았던 경험을 들려주는데, 이미 잘 나가는 작곡가의 궤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클라이언트의 니즈와 자신의 진정한 가치관의 교집합을 찾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며 수정하는 일을 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 본받고 싶다.
나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다수가 참여하는 선행의 노래에 대한 어떤 프레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 부르는 사람이 '베푸는 사람'이고, 어딘가에 우리의 베풂을 받는 '누군가'가 있다는 프레임. <We are the world> 같은 경우 아프리카의 난민을 돕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곡이니 그런 프레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워낙 그 분야의 대명사 같은 곡인지라 내게 그'프레임'까지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나니 그제야 '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었다.
행복에 대해서 새삼 생각해봤다. ~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1. 당장의 사소한 행복을 실시간으로 느낄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
2. 내가 행복해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로 정리된다.
<김이나의 작사법> p.324~325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여러 가지 생각들을 뒤로하고, 인생 선배, 그리고 직장인 선배로서 독자들에게 담담히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내가 일하는 여성으로써 자존과 독립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고, 또 훈련해야하는지 계속 혼나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김이나 작사가는 치열하게 살아남은 진정한 '프로 직장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어떤 날카로운 지적보다도 따끔한 조언을 들은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사가를 꿈꾸는 지망생은 물론, 사회초년생,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까지 누가 읽어도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정신을 빠짝 차려야하는 나와 같은 취준생들에게 추천한다.(네.. 저는 항시 반성하는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