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니즘 veganism
20170930 토요일
영국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기숙사로 이사를 온 지는 일주일이 넘었다.
그 동안 플랫 메이트들과도 친해지고 귀도 한 번 트인 것 같다(착각일까..).
기숙사로 오기 전 이사하면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요리였다.
에어비엔비에서 부엌을 쓸 수 있었지만, 일 년만에 '서양 나라'로 다시 온 나는 아직 '서양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고 집주인과 만날 때 마다 small talk를 해야하는 게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집주인이 고맙다. 게스트의 성향을 전부 존중 해 준 분이었다.) 그래서 이것 저것을 사놓고 이런 저련 요리를 하며, 그러다 우연히 마주치면 무엇을 요리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오늘 하루는 또 어땠는지 설명하고 하는 게 귀찮고 그럴 것 같았다. 어디까지 이용해야 적당할지도 모르겠었고.. 어쨌든 그런 이유로 요리 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은 왔고 예상했던 날짜보다 기숙사에 며칠이나 일찍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저것 향료들을 사놓고 거의 매일매일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요리를 즐겨하는 플랫 메이트들이 많아서 반갑고 좋았다. 우리는 서로 무얼 만드는 지 물어보고 재료를 빌려보기도 하고 맛도 보게 했다. 영국에 오기 전 나는 건강한 요리에 빠지고 있었는데, 플랫 메이트중 한 명은 비건vegan이고 한 명은 베지테리언vegetarian이라서 더욱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이 이유 말고도 나는 요 몇 달 혹은 몇 년간 비거니즘veganism에 관심이 있었다. 선뜻 오늘부터 나는 채식주의자로 살아야지! 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될 준비를 하듯 관련 유투브도 많이 찾아보고 그랬다. 매앤 처음에는 워낙 내가 먹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니 채식 음식에도 관심이 생겼던 것 같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거의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고 좋아했기에 채식식단도 맛있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가끔 레시피를 보고 따라 음식을 만들어 보았는 데 실제로 맛있어서 가끔식 채식요리를 해 먹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관심을 가졌었다. 동물을 항상 좋아했지만 '동물을 절대 죽이면 안돼! 육식주의자들은 전부 나빠!' 같은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항상 동물을 사육하는 방식과 비인간적인 도축과정에는 마음이 가 있었지만, 가리지 않고 많은 고기와 생선, 유제품을 먹고 자란 내가 한 순간에 채식주의자로 돌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간 지금보다 관심이 가겠지? 하면서 간헐적으로 비건패션/식단 등을 소비 해 왔을 뿐이다.
브라이튼은 채식주의가 정말 발달(?)한 도시이다. 유럽이 채식관련 문화에 한국보다 전체적으로 열려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브라이튼은 내가 가보았던 채식주의가 활발한 곳 중 손에 꼽는 도시인 것 같다. 비건 카페가 줄지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 할 수 있으며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시내에서 채식/유기농 중심 마켓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공급이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내가 가리지 않고 음식을 좋아하며, 또한 새로운 것을 시도 하길 좋아하는데 주변에 비거니즘이 만연하니 정말 자연스럽게 채식을 많이 하게 되었다. 눈 앞에 채식마켓이 있으니 궁금해서 그냥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ㅋㅋ... 나는 이렇게 채식중심적인 요리를 하는 날이 점점 많아 졌고, 이에 따라서 야채의 맛에 익숙해졌으며 또한 그 맛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무언가 가공 되지 않은 본연의 식재료 맛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황홀한지는 아는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렇게 나는 점점 채식중심주의적인 식이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이젠 고기의 맛이 크게 그립지 않게 되었다. 고기가 한 순간에 싫어진 것은 아니다. 20년 넘게 육식을 해온 자가 그럴리가.. 아직도 친구의 고기를 몇 점 떼어 먹으며, 며칠 전엔 비건 머스타드를 못 찾아서 그냥 아무 머스타드를 사기도 했다. 그리고 영국에 왔으니 블랙푸딩도 더 먹어 보고 싶고, 대구 요리도 하고 싶다. 상태 좋은 고기들이 저렴하니 언젠가 스테이크도 해 먹고 싶다.! 그런데 채식중심 요리가 너무 맛있다는 걸 느끼고 나니 마트에서 고기가 보여도 온갖 야채들과 버섯을 더 사고 싶다. 빨리 저것들을 사서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러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계속 의도치 않게(진심 의도치 않게!) 육류가 밀리게 되는 알고리즘이 생겼다. 이렇게 순환이 계속되었고 나의 식단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냐고 많이 물어보게 되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노력하고 있다라고 대답하고 있는데, 어쨌든 고기가 먹고싶다는 생각이 전 보다 많이 생기지 않고 채식메뉴가 있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그 요리를 고르니 거의 채식주의자가 맞는 것 같다.
이렇게 서론이(..;) 길었는데, 오늘 내가 적어 놓고 싶었던 것은; 그러다 보니 지레 짐작만 하던 채식주의가 마주 하는 선입견이나 혐오를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자가 아니면 미소지니를 몸소 경험하기 어렵듯,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차별을 진실로 이해하는 것이 어렵듯, 채식도 마찬가지 였다. 당연한 것인데, 내가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니 정말 알게 되고 있다. 뭐, 아직 눈 앞에서 채식'혐오'를 당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 제발 고기와 생선을 먹어라 등의 한심섞인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고, 누군가와 외식을 하게 되면 채식주의자들은 힘들게 된다는 것을 내가 느껴보고 있다. 누가 직접 뭐라고 하지 않아도, 괜히 내가 잘못한 것 같고 쿨하지 않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냥 여기서 나만 고기 먹으면 모든 것이 해결 되는데, 내가 굳이 굽히지 않고 있다는 생각. 사실 굳이 이야기 하기 민망할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식단은 개인의 선택이다. 음 이 말 좀 위험한 것 같다. 모든 식단이 온전히 개인의 선택인 경우는 없을 것이다. 국가와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굉장히 미시적으로 본 관점에서 그날의 식단을 고를 때, 그 순간 그 선택의 선택은 어쨌든 그 사람이 한다는 말이다. (설명...충인가..) 그런데 그 선택이 육심중심적인 분위기에서 마이너가 된다.. 굳이 까탈스럽고 '헐 어떻게 고기를 안 먹어' 이런 사람이 된다. 그렇게 까지 안 그렇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렇게 까지 장애인 차별, 인종 차별, 여성 차별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본인은 느낀다. 다수의 집단에 속한다면 느끼지 못할 사소한 것들을. 갑자기.. 극단적 채식주의를 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채식주의자였다고 했었던 친구들 얼굴들이 막 떠오르면서 연락을 하고 싶어지는 정도..랄까...
오늘도 이 글을 쓰고 이 동네 처음 가보는 헬스장에 갔다가 마트 가서 조금 장을 봐올 생각이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복잡했던 머릿 속이 조금 맑아지는 것 같고 기분 좋다. 아 이글을 우연히 발견한 분들도, 나도 오늘 하루 행복하길!
이 글을 쓰며 마신 오늘 늦은 아침 스무디
1. 시금치 두 뭉큼을 흐르는 물에 씻어 믹서기에 넣는다.
2. 갖고 있는 모든 씨앗 (씨아씨드, 플랙씨드, 포비씨드)들을 들이(..)붓는다.
3. 갖고 있는 모든 슈퍼푸드 파우더 (마카파우더, 슈퍼그린파우더) 를 한 숟갈씩 넣는다.
3. 두유를 필요해 보이는 만큼 붓는다. 그리고 한 번 돌린다.
4. 냉장고에 남아있던 아보카도 두 스푼을 넣는다.
5. 얼려놓은 바나나를 필요해 보이는 만큼 넣는다.
6. 오트밀 작은 반 주먹을 넣는다.
7. 메이플 시럽을 조금.. 넣는다.
8. 쉐키쉐끼 곱게 간다.
9. 그린스무디 완성
+ 여러 채소 중에 시금치는 맛이 강하지 않아 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는 스무디라고 생각한다. ㅎㅎ
+ 어떻게 보면 참 아이러니한 것 같다. 모든 음식을 좋아하기에 채식주의에 관심이 생기다니
+ 인생 전부를 변비로 고생한 나로써 채식중심주의 식단을 정말 300프로 추천한다. 몇 주 전만 해도 변비약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화장실 갈 정도였다. (변비관련 글을 쓸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