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5
1 글을 쓰러 오는 길에는 그렇게 아이디어가 샘솟더니, 카페에 와서 자리를 잡으니 머리가 다시 리셋되었다. 이래서 메모를 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다. 어쩜 이렇게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수가 있지?
2 어쩌면 이 카페라는 공간이 내가 있기에 편한 공간이어서 그럴 수 있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 말이다. 부모님의 집에서 살 때는 내 집이 아니니 나의 규칙에 온전히 따르기 어렵다. 투닥투닥 엄마와 싸우다 보면 기분만 나빠지지 결국 달라지는 상황은 없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아도 나의 머리는 항상 팽팽 돌아가고 있다. 나의 기분을 내려앉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에서 사 온 예쁜 원피스를 입으려다 너무 야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위에 잠옷 티셔츠를 걸쳐 입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집을 나올 때 몰래 티셔츠를 벗고 ‘한 소리’ 듣지 않고 외출할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집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내내 음악을 들으며 글쓰기 주제에 대한 망상에 빠져있었는데, 아직도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는 나에게 왜 이렇게 입었냐고 지적을 할 사람도 없고, 쳐다볼 사람도 없다. 내가 ‘내’가 될 수 있는 순간이다. 학교를 떠나 학생 신분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안전한 공간이 이렇게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했다. 사람은 원래 잃기 전에는 감사함을 모르니까.
3 카페에 들어오면서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손님이 익숙한 책을 읽고 있었다. 설마 하고 봤는데 맞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내가 읽던 양장본으로! 최근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데, 얼마나 반가운지 말을 걸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요즈음 소심한 자아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에 아직 말을 걸지는 못 했다.
4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아쉬움 없이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고, 설사 그렇다면, 내가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면 어차피 나의 창의력의 원천은 줄어들 것이다(라고 자위하자).
5 올 해 안에 나의 작업실의 공간을 가질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집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의 고리가 이어지다가도 멈춘다. 내가 온전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6 데이터는 무섭다. 나는 아이패드를 들고 이 카페에 온 적이 없는데, 와이파이가 저절로 연결된다. 애플은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기기끼리 서로 공유하나보다...